500권의 책을 쓴 정약용이 말하는 ‘글 잘 쓰는 법’
걷기는 특기가 될 수 없지만, 수영은 특기가 될 수 있다. 전자는 대부분이 할 수 있고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해력(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시대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점점 희소해지는 필수 자원이 되고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더욱 가치 있어지는 시대라는 뜻이다.
이제는 기업조차 PPT 대신 텍스트 문서를 선호한다. 아마존은 이미 사내 보고를 ‘6 Pager(6쪽짜리 서술형 문서)’ 형식으로 대체했고, 현대카드·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대기업도 화려한 디자인 대신 ‘글의 논리’로 승부 보는 문서를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형 매장이 스마트폰 화면 속 작은 온라인몰로 축소되면서, 짧은 글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최근의 온라인 혁신은 대부분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개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이 UX 라이팅(UX Writing) 이다.
“이제 기업은 디자인이 아니라 글로 소통한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쓰기,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라
가장 널리 알려진 글쓰기 방법은 구양수(歐陽脩)의 삼다론(三多論) 이다.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라(多商量).”
하지만 ‘많이 생각하라’는 다소 모호하다. 이미 독서와 글쓰기 자체가 생각을 수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많이 피드백을 받고 반영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구양수의 삼다론만으로는 글쓰기 실력을 체계적으로 키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글쓰기 철학을 여기에 덧붙이고 싶다.
정약용의 삼다론(三多論)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전한 글쓰기 조언을 나는 ‘정약용의 삼다론’ 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핵심은 다음 세 가지다.
1. 독서(讀書): 많이 읽어라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는 구양수의 삼다론과 동일하다.
글쓰기는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균형이다.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다. 많이 읽고, 다양한 문장을 접해야 좋은 문장이 나온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보다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하다. 정보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감성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을 분석하고, 구조를 파악하고, 문장을 뜯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2. 초서(抄書): 핵심을 베껴라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약용은 책의 중요한 부분을 베껴 쓰는 ‘초서’(抄書) 를 강조했다.
✔ 좋은 문장을 그대로 따라 써라.
✔ 핵심 내용을 정리해 남겨라.
이 과정에서 독서는 나의 ‘자산’이 된다. 책을 읽고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면,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다.
정리되지 않은 독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보’일 뿐이다. 나는 이 초서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정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 필요할 때 빠르게 검색할 수 있다.
📌 과거에 기록한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내 글을 쓸 때 논리적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쌓아둔 초서는 나중에 글을 쓸 때 강력한 무기가 된다.
3. 저서(著書): 많이 써라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결국 하나다. 많이 써보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은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핵심 요소로 ‘꾸준함’을 꼽았다.
✔ 규칙적으로 써라.
✔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라.
✔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써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글쓰기의 ‘관성’을 만드는 과정이다. 근육이 운동으로 단련되듯, 글도 써야 는다.
피드백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공개적으로 써라.’
✔ 남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려라.
✔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써라.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피드백이 없으면 실력 향상도 어렵다.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약용은 자식과 제자들의 글에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었다. 본인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승과 동료에게 조언을 받았다.
그 결과, 그는 500권이 넘는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물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를 통해 스스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객관화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그래서 남의 눈을 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
고도 비만인 사람이 ‘몸짱 되는 법’을 말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듣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큐가 아니라 코미디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아직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 글이 ‘글쓰기의 정답’ 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100m를 25초에 뛰던 사람이 15초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가 말하는 ‘빨리 달리는 법’은 한 번쯤 들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은 ‘나’에게 전하는 글이기도 하다.
사진: Unsplash의Aaron Bu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