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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중국인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

by 브레인메이드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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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 의 Christian Wiediger

 

 

첫 회사를 글로벌전형으로 입사해서 동기 중 대다수는 외국인과 유학생이었다. 그중 상당수는 중국인이었다. 그룹 교육기간 동안 자연스레 중국 동기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잘 모르던 중국 문화에 대해서도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교육 후 팀에 배치되자마자 운이 좋게도 3개월 동안 일하지 않고 중국어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외국어생활관'이라는 시설에서 하루종일 먹고 자면서 중국어 공부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심지어 월급도 받으면서). '3개월 공부해서 뭐가 되겠어'라는 초기의 의구심은 빠르게 사라졌다. 백지에서 시작한 나의 중국어는 빠르게 늘었고, 3개월 이후 새하얗던 백지에는 TSC 4급(중국어 말하기 시험 등급)이라는 글자가 적히게 되었다.

 

중국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입사 3년 차에 중국에 수출도 하는 남성복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다. 본사의 마케팅 전략을 중국 법인에도 공유하고 협의도 해야 했기에 자연스레 중국 출장도 가게 되었다. 인생 첫 중국 방문이었다. 

 

이웃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모르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 출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상하이는 마치 뉴욕을 연상시키는 스카이라인을 자랑했고 고급 식당과 카페가 즐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큼이나 혹은 더더욱 디지털화된 서비스에 입이 떡 벌어졌다. 노숙인이 QR코드가 적힌 종이를 들고 구걸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자마자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들 외에 묘하게 신기한 광경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핸드폰을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학생이건 어른이건 간에 핸드폰을 거울 보듯이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메신저를 쓸 때 문자 대신 음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문자를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물론 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음성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매우 희귀한 일이기에 이 광경이 매우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을 할 거면 통화를 하면 되지 왜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수천 자가 넘는 한자가 문자 메시지에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알파벳으로 손쉽게 한자를 적을 수 있는 '병음'과 '자동완성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한자 문자 메시지를 써보니 한글을 쓸 때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큰 불편함을 못 느꼈다. 일단 나의 막연한 추측은 틀린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한국에 돌아와서 중국 친구들에게 이에 대해서 물어봤다. 왜 문자가 아닌 음성메시지를 보내는지. 모두가 동일한 답변을 했다. "편하니까." 더욱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보니 다들 크게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파고 들어가다 보니 '편하니까'는 '익숙하니까'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문자'보다 '음성메시지'가 더 익숙한 이유는 무엇일까? 클리프 쿠앙과 로버트 패브리칸트의 <유저 프렌들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스마트폰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며, 전혀 다른 멘탈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앱은 그다지 인기가 없고 앱스토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무슨 운영체제를 쓸지는 무슨 채팅 앱을 쓸지에 비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

이런 큰 전환이 중국에서 먼저 일어난 이유를 개발자들에게 물으면, 중국인 대부분이 데스크톱 컴퓨터를 쓰며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앞서 살펴본 인도와 케냐 같은 개발도상국 스마트폰 사용자들처럼, 중국인들도 어린 시절 드롭다운 메뉴에서 기능을 찾거나 웹브라우저를 통해 웹에 진입하는 개념을 배우며 자라지 않았다. 이런 기대감이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이미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 클리프 쿠앙, 로버트 패브리칸트, <유저 프렌들리>, 청림출판, 2022 중 -

 

PC 컴퓨터를 오랫동안 사용했던 우리는 스마트폰을 일종의 업그레이드된 PC 컴퓨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메신저에서 문자를 보내듯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와 달리 PC 컴퓨터 사용경험이 별로 없는 중국인들은 스마트폰을 일종의 '전화기'로 인식한다. 기존의 전화기처럼 스마트폰도 '음성' 위주로 활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음성 메시지'는 익숙한 것이자 편한 것이 된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사례 나온다. 인터넷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인도 여성들과 달리 케냐 여성들은 페이스북의 열렬한 사용자였다. 케냐 여성에게 페이스북은 기존에 쓰던 휴대전화의 주소록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궁금한 게 생기면 구글에 검색하기보다 페이스북이라는 주소록에 등록된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익숙하고 편한 것이다.

 

이처럼 신기술이 나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의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중국인이 문자 메시지 대신 음성 메시지를 활용하는 것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스마트폰을 전화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의 신기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율주행차를 자동차로 볼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볼 것인지? 인공지능을 비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전지전능한 신으로 볼 것인지? 

 

앞으로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변화할까? 아마도 신기술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좌우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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